들판을 가로지른 전봇대

1980년대 · 독정 정미소

들판을 가로지른 전봇대 ​

수채화로 그린 들판을 가로질러 정미소로 이어지는 배전 전봇대

야적장에서 비와 씨름하기 전, 배병희는 정미소의 동력부터 바꾸어야 했다. 당시 정미소는 50마력 디젤 발동기로 7미터나 되는 쇠 회전축(장축)을 돌렸다. 이 축에 가죽 평벨트 수십 개를 걸어 도정기와 석발기, 승강기를 한꺼번에 움직였다.


수채화로 그린 장축과 평벨트로 기계를 돌리던 정미소 내부

이런 방식은 시끄럽고 매연이 심했다. 빠르게 도는 벨트에 옷자락이나 몸이 끼일 위험도 컸다. 기계 하나만 고장 나도 방앗간 전체가 멈춰 섰다.

배병희는 안전하고 쾌적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정미소에 전기를 들이기로 했다. 당시 독정리 들판에는 공장용 고압선이 들어오지 않았다. 380볼트 삼상 전력을 쓰려면 직접 선을 끌어와야 했다.

그는 다시 농지 일부를 처분해 자금을 마련했다. 이어 들판을 가로지르는 전봇대 수십 개를 직접 세우며 삼상 고압선을 정미소까지 끌어왔다.

농촌 배전망의 용량이 모자라 전압이 불안정해졌다. 배병희는 위상변환기(Phase Converter)를 설치해 전력 문제를 해결했다. 그다음 위험한 7미터 장축과 가죽 벨트를 철거하고, 기계마다 전기 모터를 따로 달았다.

소음과 매연이 크게 줄었다. 기계를 하나씩 따로 돌리고 멈출 수 있게 되면서 사고 위험은 줄고 벼 찧는 일은 한결 빨라졌다.

전기를 들인 뒤로는 야적장만으로 감당이 되지 않았다. 배병희는 다시 농지 일부를 처분하여 부지를 마련하고 넓은 곡식 창고를 지었다. 대형 화물차와 트랙터가 논두렁에 빠지지 않고 드나들 수 있도록 사비를 들여 진입로도 탄탄하게 닦았다.

전기로 기계를 돌리게 된 정미소는 삯을 받고 벼를 찧어 주는 데서 그치지 않았다. 농민들의 벼를 현금으로 사들여 직접 찧어 파는 데까지 판을 키웠다.

배병희는 인천과 서울의 양곡 도매상회를 찾아다니며 화성 쌀을 팔 길을 뚫었다. 물량이 모자랄 때는 정부 양곡 공매에도 참여했다.

외상 거래가 흔했던 곡물 시장에서 도매상의 부도나 대금 지연으로 손해를 보는 일도 잦았다. 자금이 부족할 때는 자신이 농사지은 쌀을 팔거나 빚을 얻어서라도 볏값을 정산했다.

배병희는 “정미소가 손해를 보더라도 농민의 볏값은 약속한 날짜에 반드시 치른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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