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쇠갈고리

1936년, 일제강점기 말이었다. 배병희는 충남 태안 안면도 중장리에서 3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황토밭 농사만으로는 끼니를 잇기 어려웠다. 물이 빠지면 드러나는 서해 갯벌이 대식구를 먹여 살렸다.
물때가 되면 어머니는 ‘조새’를 챙겨 들고 바다로 나섰다. 굴을 쪼개는 쇠갈고리였다.
겨울 칼바람에도 어머니는 차가운 개흙을 건넜다. 바위틈에 쪼그려 앉아 쉬지 않고 조새질을 했다.
어머니의 조새는 손잡이가 반질반질 닳아 있었다.

가족은 비탈진 황토밭에 고구마와 감자를 심었다. 밭에서 난 것과 갯벌에서 거둔 것으로 대식구는 굶주림을 면했다.
쌀밥 한 그릇 배불리 먹기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래도 어린 배병희는 흙과 바다를 터전 삼아 튼튼하게 자랐다.
그는 어머니의 언 손과, 아버지와 형들의 땀에 젖은 등을 보며 일하는 법을 몸으로 익혔다.
집안에 일손이 늘 모자라 그도 일찍부터 일을 거들었다.
소년은 시키지 않아도 쇠스랑을 챙겨 들고 밭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