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삯으로 건넨 볍씨

1980년대 · 독정 정미소

품삯으로 건넨 볍씨 ​

수채화로 그린 볍씨를 가져간 이웃에게 정미소 일손을 청하며 품삯으로 배려하는 배병희

묵은 곡식은 떨어지고 햇곡식은 나오지 않은 어느 봄날 밤이었다. 못자리에 넣을 볍씨마저 동나 발을 동동 구르던 가난한 이웃이 있었다. 그가 정미소 헛간 구석에서 숨을 죽인 채 몰래 볍씨를 퍼 담고 있었다.


수채화로 그린 볍씨를 가져가는 이웃을 보고 조용히 돌아서는 배병희

헛간을 지나다 우연히 그 모습을 본 배병희는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소리를 치지도, 도둑이라 다그치지도 않았다. 시골 동네에서 도둑으로 몰리면 본인은 물론 식구들까지 평생 낯을 들지 못했다. 야반도주라도 해야 할 처지였다.

그는 헛기침 한 번 하지 않고 가만히 발길을 돌려 어둠 속으로 물러섰다. 가난에 쫓기는 이웃의 딱한 사정을 모르지 않았다.

이튿날에도 배병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이웃을 살갑게 대했다. 그러고는 며칠 지나 그가 무안하지 않도록 슬며시 말을 건넸다.

“정미소에 잔손 가는 일이 영 밀렸는데, 며칠 와서 일손 좀 보태주시오.”

배병희는 볍씨를 공짜로 쥐여주는 대신 품삯으로 건네 이웃의 자존심을 지켜주었다.


이웃을 대하는 마음 씀씀이는 평소에도 한결같았다.

병원이나 약국이 멀던 시절이었다. 한밤중에 누가 급체로 배를 움켜쥐거나 손발이 차게 굳어 식은땀을 흘리면, 사람들은 주저 없이 정미소로 달려왔다.

고된 들일로 온몸이 쑤시는 와중에도 배병희는 싫은 내색 없이 낡은 침통을 챙겨 들었다. 굳은 팔다리를 주무르고 손끝과 혈자리를 정성스레 따서 체기를 가라앉혔다. 환자의 얼굴에 핏기가 돌고 숨이 편안해질 때까지 묵묵히 곁을 지켰다.

비가 온 뒤 질척한 농로나 흙길에서 이웃의 경운기나 트럭이 도랑에 처박혀 바퀴만 헛돌 때도 마찬가지였다.

부르는 소리가 들리면 그는 하던 일을 놓고 트랙터를 몰고 갔다. 굵은 쇠줄을 걸어 단숨에 끌어내 주었다. 연신 머리를 조아리는 이웃에게 그는 말했다.

“농사짓다 보면 다 그런 거지요.”

흙 묻은 손만 툭툭 털고 덤덤히 돌아섰다.

기계에 밝았던 그는 안면도에 살던 1970년대 초, 집에 흑백 텔레비전을 남보다 앞서 들여놓았다.

저녁마다 뉴스나 연속극을 보러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가 안방 문을 활짝 열어주어, 집은 자연스레 마을 사랑방이 되었다.

훗날 독정리에서는 정미소와 집에 전화기를 남보다 앞서 들여놓았다. 전화기는 농가들과 도정 날짜를 맞추고 서울·인천의 거래처와 연락하는 생명선이었다. 배병희는 자녀들에게 전화 예절만큼은 유독 엄격하게 가르쳤다.

“전화벨이 두 번 울리기 전에 얼른 받아라. 상대방을 기다리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니다.”

전화를 거는 사람은 급한 용무나 간절한 사정이 있기 마련이었다. 벨이 길게 울리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사람을 무시하고 신용을 깎아 먹는 일이라고 그는 여겼다.


수채화로 그린 트럭에서 내려 길섶의 어르신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배병희

트럭을 몰고 신작로를 달리다가도 길섶에 동네 어르신이나 이웃이 보이면 저만치서 차를 세웠다. 흙먼지가 날릴세라 시동부터 껐다. 그러고는 차에서 내려 허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건넸다.

차창만 내리고 고개만 까딱하는 법이 결코 없었다.

자녀들에게도 사람 대하는 법을 입버릇처럼 당부했다.

“사람을 오늘만 보고 내일은 안 볼 것처럼 대하지 마라. 인연은 돌고 돌아 언젠가 다시 만나는 법이다.”

“미운 사람일수록 더 너그럽게 대해야 한다. 세상 살면서 남에게 원망 살 일은 만드는 게 아니다.”

그는 눈앞의 잇속보다 사람의 처지를 먼저 헤아렸고, 말보다 행동으로 독정리 이웃들의 믿음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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