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가구가 따라나선 길

1977년 · 안면도에서 남양만으로

일곱 가구가 따라나선 길 ​

수채화로 그린 이삿짐 트럭을 타고 안면도에서 화성으로 향하는 가족과 이웃들

1970년대 중반, 안면도 일대에 큰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섬 안팎에 대규모 기업 목장이 들어서면서 논밭과 야산이 잇따라 팔려 나갔다. 방조제 공사와 간척의 여파로 갯벌이 줄어들자, 겨울철 대식구의 생계를 잇던 김 양식마저 앞날이 불투명해졌다.

태어나 마흔두 해를 살아온 고향이었다. 조상 대대로 일궈온 황토밭과 소년 시절 홀로 도리깨를 내리치던 마당이 있었다. 칼바람을 맞으며 손발이 부르트도록 김을 매고 멸치를 건져 올리던 바다도 있었다. 그곳이 그의 전부였다.

하지만 험한 비탈밭과 좁은 다랑논에만 머물러서는 자라나는 일곱 남매와 늙으신 어머니의 앞날을 열어주기 어려웠다. 일찍이 농기계의 힘을 내다보았던 배병희의 생각은 분명했다. 좁은 섬을 벗어나 너른 평야에서 기계로 벼농사를 크게 지어야만 식구들의 살길이 트인다고 보았다.

때마침 경기도 화성군 남양만 간척지에서 농민 입주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방조제를 쌓아 바다를 막아낸 그곳에 거대한 들판이 새로 열렸다는 이야기였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갯벌로 식솔을 이끌고 나서는 일은 아득한 모험이었다. 자칫 잘못되면 평생 일군 기반을 한순간에 잃을 수도 있었다. 고향에서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온 집안의 생계를 두 어깨에 짊어져 온 가장이었다. 결정을 앞둔 마음은 무겁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 안면도의 전답과 김 양식 기반, 집을 차근차근 정리하며 새 땅으로 갈 밑천을 마련했다. 아들의 우직한 성미와 야무진 손끝을 누구보다 잘 아는 어머니도, 형제들도 그의 뜻을 묵묵히 믿고 밀어주었다.

배병희가 안면도를 정리하고 화성으로 향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마을이 술렁였다. 대대로 섬을 벗어나 본 적 없던 사람들에게, 낯선 타향 간척지로 살림을 옮기는 일은 엄두조차 내기 힘든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고향 이웃 일곱 가구가 하나둘 그를 찾아와, 함께 길을 나서겠다는 결심을 털어놓았다. 실패하면 온 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릴 수도 있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곁에서 지켜본 배병희라는 사람을 향한 믿음이 두려움을 앞섰다.

들판에서 이동식 탈곡팀을 꾸릴 때도 그는 늘 가장 고된 자리를 도맡았다. 타작한 곡식은 저울에 달아 낟알 한 톨 속이지 않고 나누어 주었다. 마을에 궂은일이 생기면 먼저 소매를 걷었고, 어려운 이웃을 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이웃들은 이렇게 믿었다.

‘배병희가 가는 길이라면 굶어 죽지는 않는다.’

‘그 사람과 함께라면 허허벌판에 떨어져도 어떻게든 살아갈 길이 생긴다.’

일곱 집은 오직 그 믿음 하나에 기대어 고향 살림을 정리하고 그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이주 행렬에는 뜻밖의 동행도 있었다. 안면도 마을에서 돌봐줄 피붙이 하나 없이 홀로 외롭게 지내던 이웃 어르신이었다.

배병희는 늙으신 어머니와 아내, 어린 일곱 남매를 건사해야 했다. 그로서도 낯선 간척지로 가는 길은 숨이 턱에 닿을 만큼 버거웠다. 살림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새 터전으로 떠나는 마당에 남들 같으면 식솔 하나라도 줄이려 애썼을 터였다.

그러나 배병희는 차마 그 이웃을 혼자 두고 발길을 돌릴 수 없었다. 사람들이 하나둘 떠난 빈 마을에 어르신 혼자 남으면 끼니는 어찌 잇고 겨울은 어찌 날지 걱정이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지만, 배병희에게는 한마을에서 오랫동안 정을 나누며 살아온 소중한 이웃이었다.

“우리랑 같이 가십시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배병희는 망설임 없이 이웃의 거친 손을 잡았다. 단출한 세간을 손수 챙겼고, 식솔들과 함께 한 가족으로 품었다.

한때의 동정으로 끝난 일이 아니었다. 남양만에 자리를 잡은 뒤에도 그는 어르신을 친부모처럼 섬겼다. 훗날 복지시설로 모실 때까지 그 정성은 한결같았다.

곁에서 아버지의 속 깊은 배려를 보고 자란 자식들 역시, 어른이 되어 가정을 이룬 뒤에도 어르신을 찾아뵈며 따뜻한 정을 나누었다.

1977년 무렵, 마침내 고향을 떠나는 날이 밝았다. 화성으로 이동하는 일은 ‘오산 큰아버지’로 불리던 친족이 주도했다. 이삿짐 트럭에는 손때 묻은 살림살이와 함께 농기계를 실었다. 안면도 들판에서 함께 땀 흘리며 다루던 10마력 경운기와 탈곡기, 바인더였다.

배병희는 어머니의 주름진 손을 잡고 어린아이들과 어르신을 건사했다. 그의 뒤로, 그를 믿고 따라나선 이웃 일곱 가구의 이삿짐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짐과 기계를 실은 트럭을 타고 화성으로 향하는 동안, 멀어지는 안면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든 고향을 떠나는 서글픔도, 낯선 간척지에서 무엇이 기다릴지 모른다는 불안도 왜 없었겠는가. 그래도 사람들은 배병희를 믿고 마음을 다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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