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밥상

정미소 일을 돕던 자식이 밤늦게 돌아온 날이었다. 아버지는 저녁을 들지 않고 있었다. 상 위에 놓인 갓 삶은 수육에서 김이 오르고 있었다.
“아버지, 왜 먼저 진지 안 드시고 기다리셨어요?”
아버지는 대답 대신 젓가락을 쥐여 주었다.
“식기 전에 어서 먹어라.”
자식은 그날의 수육과 아버지의 짧은 말을 오래 기억했다.
평생 흙을 일구며 근검절약이 몸에 밴 아버지였다. 그런데 자식들 일에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명절에 자식의 친구들이 인사를 오면 덕담에는 서툴렀다. 대신 돌아가는 길에 말없이 두둑한 용돈을 쥐여 주었다. 친구들은 그 용돈을 반겼다.

손주가 태어났다는 전화를 받고도 그는 담담하게 안부만 물었다. 이튿날, 그는 서울 병원에 와 있었다. 갓 태어난 손주를 한참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손주가 아파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만사를 제쳐 두고 병원으로 갔다. 제 눈으로 손주를 보고서야 돌아섰다.
작은딸의 시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랬다.
어린 딸 곁에 늘 있어 주지는 못한 아버지였다. 그날 빈소에 가장 먼저 온 사람은 아버지였다.
정미소 형편이 어려운 해에도 자식들의 혼인 잔칫상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차렸다.
그러나 정작 자신을 위한 상 앞에서는 박했다. 자식들이 환갑이나 칠순 잔치를 권해도 크게 열지 않았다.
“산 사람이 번잡스럽게 무슨 잔치냐?”
평생 수많은 이에게 쌀을 내어주고, 자식에게는 아낌없는 잔칫상을 차려주었다.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한 상은 끝내 물렸다. 자식들은 긴 세월이 흐르고 머리에 서리가 내린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버지가 묵묵히 걸어온 고단한 삶이야말로, 가족과 세상을 배불리 먹여 살린 가장 크고 따스한 밥상이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