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치 떼를 쫓는 청년

1970년대 초 · 서해 갯가

멸치 떼를 쫓는 청년 ​

수채화로 그린 낭장망을 걷어 올려 은빛 멸치를 거두는 배병희와 동료들

1970년대 초반, 배병희는 바다에서 또 다른 살길을 찾았다. 겨울은 김으로 버틸 수 있었으니, 이번에는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일 틈틈이 할 일거리가 필요했다.

1972년 무렵, 그는 안면도 유지와 손을 잡았다. 여기에 뜻을 함께한 마을 사람 두세 명도 힘을 보태 바다로 나섰다.

고깃배를 타고 먼바다로 나갈 만한 큰 밑천은 없었다. 그래도 서해 갯가의 거센 물살과 지형을 지혜롭게 이용한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일이었다. 그들이 택한 것은 안면도 갯가에서 흔히 건간망이라 부르던 낭장망(浪長網)이었다.

낭장망은 조류가 드나드는 얕은 바다 길목에 참나무 말뚝을 단단히 박고, 물살 방향으로 긴 자루그물을 쳐서 고기를 잡는 어구였다. 밀물을 타고 들어온 고기들이 썰물 때 빠른 여울에 휩쓸려 그물 끝자루로 모여들었다.

바닷일은 물때가 곧 시계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썰물이 끝날 무렵이 되면, 배병희와 동료들은 물길을 건너가 묵직하게 가라앉은 그물을 걷어 올렸다.

그물을 들어 올리면 퍼덕이는 멸치 떼가 은빛을 뿜으며 쏟아져 나왔다. 맑고 투명한 실치와 꼴뚜기, 갖가지 바닷물고기도 그물 가득 걸려들었다.


수채화로 그린 갯가 자갈밭의 가마솥에서 멸치를 삶는 배병희

멸치는 성질이 급해 물 밖으로 나오면 금세 숨이 끊어지고 살이 물러지기 쉬웠다. 신선도를 지키는 일이 생명이었다. 배병희는 지체 없이 바닷바람이 들이치는 자갈밭에 커다란 무쇠 가마솥을 걸었다.

장작불을 지피고 길어 온 바닷물을 가마솥 가득 부어 펄펄 끓였다. 갓 잡은 멸치는 소쿠리째 곧장 끓는 바닷물에 들어갔다.

바닷물의 짭조름한 간이 멸치 살에 알맞게 배어들었다. 따로 소금을 치지 않아도 비리지 않고 달착지근한 감칠맛이 돌았다. 살이 무르지 않도록 한소끔 데쳐 건져내는 것은 손끝과 눈썰미로 익힌 그만의 요령이었다.

하얗게 김이 피어오르는 멸치를 자갈밭에 넓게 편 그물망 위에 고루 널어 말렸다.

햇볕을 머금은 몽돌이 아래에서 은근한 열기를 뿜고, 위로는 바닷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멸치는 비린내 없이 맑은 은빛으로 바삭하게 말라갔다.

함께 잡힌 여린 실치는 삶지 않고 따로 손을 보았다. 겨울철 김을 뜰 때 쓰던 네모난 나무틀을 가져와, 투명한 실치를 얇고 가지런히 펴 얹어 갯바람에 말렸다. 이것이 바삭하고 고소한 뱅어포가 되었다.

햇살과 해풍에 잘 마른 멸치와 뱅어포는 빛깔이 곱고 맛이 달아 장터에서도 찾는 이가 많았다.

한 해 남짓 이어진 낭장망 일은 귀한 벌이였다. 물때를 읽는 눈과 빠른 손놀림만으로 쏠쏠한 수입을 올렸다. 작업을 마친 날이면 안면도 유지와 동료들에게 일한 몫대로 삯을 공정하게 나누어 주었다.

그물에 함께 걸려 올라온 숭어나 우럭, 망둑어 같은 싱싱한 잡어는 집으로 넉넉히 챙겨왔다.

소금기 밴 얼굴로 돌아온 저녁이면 냄비 가득 무와 풋고추를 썰어 넣고 잡어 매운탕을 칼칼하게 끓였다. 매운탕에 짭조름한 생선 조림까지 오르면 대식구의 하루 고단함이 풀렸다.

1936 안면도 · 7화

멸치 떼를 쫓는 청년

배병희 자전소설

재생 속도

다음 화 자동으로 듣기

한 화가 끝나면 다음 화를 자동으로 들려 드려요

설정

글자 크기

줄 간격

서체

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