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형제가 뭉쳤다 ​

수채화로 그린 공장 앞에서 다섯 아들과 들녘을 바라보는 아버지

2000년대에 들어 정미소는 본격적으로 성장해 갔다. 장성한 아들들이 저마다 역할을 나누어 맡으며 가업에 힘을 보탰다.

2000년에는 셋째 아들이 합류했다. 셋째는 농대를 나와 농협에서 계약재배 일을 맡았던 사람이었다. 농협을 그만둔 뒤에는 독정리 논과 서산 간척지에서 여러 해 직접 농사를 지었다.

셋째는 종자기사 자격을 갖추고 종자업 등록까지 마쳤다. 좋은 품종을 골라 농가에 보급하는 일이 그의 몫이 되었다.

고시히카리와 백진주, 수향미 같은 품종을 들여와 농가와 함께 길렀다. 필요한 시설을 들이는 일에도 앞장섰다.

2003년에는 영농조합법인을 세워 계약재배의 틀을 다졌다. 정미소는 좋은 벼를 꾸준히 들여올 수 있게 되었다.

이어 식자재 유통 대리점을 하던 넷째 아들이 합류해 정밀 도정과 곡물 가공을 맡았다.

막내아들은 서울에서 온라인 쇼핑몰을 이끌며 도시 소비자들에게 독정리 쌀을 알렸다. 새 고객과 판로를 넓혀 독정 RPC의 성장에 힘을 보탰다.

이로써 다섯 형제가 저마다 맡은 자리에서 손발을 맞추게 되었다.

아버지는 큰 틀에서 중심을 잡아 주고 실무는 아들들에게 믿고 맡겼다. 형제들이 힘을 모으자 정미소는 튼튼한 향토 기업으로 자랐다.

정미소 안살림을 현대화하고 직거래의 기틀을 닦는 데는 큰며느리의 몫이 컸다. 큰며느리는 손으로 쓰던 장부 대신 전산 시스템을 들여 살림을 투명하게 다잡았다.


수채화로 그린 공장 일을 마친 뒤 책을 펴고 공부하는 맏아들

정미소가 체계를 갖추어 가자 맏아들은 청년 시절 접어 두었던 배움의 길을 다시 걸었다. 가족의 격려 속에 마흔다섯의 나이로 한국농수산대학교에 입학했다.

낮에는 정미소 현장을 챙기고 밤에는 공부에 매달렸다. 강의를 녹음해 두었다가 다시 들으며 농업 이론과 기술을 익혔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며 한국농수산대학교 총장상을 받았다.

어려운 시절 배움의 기회를 놓쳤던 배병희에게 맏아들의 졸업은 큰 기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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