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을 가로지른 전봇대

야적장에서 비와 씨름하기 전, 배병희는 정미소의 동력부터 바꾸어야 했다. 당시 정미소는 50마력 디젤 발동기로 7미터나 되는 쇠 회전축(장축)을 돌렸다. 이 축에 가죽 평벨트 수십 개를 걸어 도정기와 석발기, 승강기를 한꺼번에 움직였다.
발동기가 돌면 대포를 쏘는 듯한 소리가 들판을 울렸다. 매연도 심했다.
빠르게 도는 벨트에 옷자락이나 몸이 끼일 위험도 컸다. 기계 하나만 고장 나도 방앗간 전체가 멈춰 섰다.
배병희는 정미소에 전기를 들이기로 했다. 일꾼들이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어야 했다.
당시 독정리 들판에는 공장용 전선이 들어오지 않았다. 380볼트 삼상 전력을 쓰려면 선을 직접 끌어와야 했다.

그는 다시 농지 일부를 처분해 자금을 마련했다. 들판을 가로질러 전봇대 수십 개를 세우고 삼상 고압선을 정미소까지 끌어왔다.
농촌 배전망은 용량이 모자라 전압이 불안정했다. 배병희는 위상변환기를 설치해 이 문제를 풀었다. 그다음 위험한 7미터 장축과 가죽 벨트를 걷어 내고 기계마다 전기 모터를 따로 달았다.
소음과 매연이 크게 줄었다. 기계를 하나씩 따로 돌리고 멈출 수 있게 되자 사고 위험은 줄고 도정은 한결 빨라졌다.
전기를 들인 뒤로는 야적장만으로 감당이 되지 않았다. 배병희는 또 농지 일부를 팔아 부지를 마련하고 넓은 곡식 창고를 지었다. 대형 화물차와 트랙터가 논두렁에 빠지지 않고 드나들 수 있도록 제 돈을 들여 진입로도 닦았다.
배병희는 인천과 서울의 양곡 도매상을 찾아다니며 화성 쌀을 팔 길을 뚫었다. 물량이 모자랄 때는 정부 양곡 공매에도 참여했다.
외상 거래가 흔하던 곡물 시장에서는 도매상이 부도를 내거나 대금을 미뤄 손해를 보는 일도 잦았다. 돈이 모자랄 때는 제 논에서 거둔 쌀을 팔거나 빚을 내서라도 볏값을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