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선 탈곡기를 돌려라
1970년대 초만 해도 섬마을에서는 대개 도리깨로 낟알을 털었다. 가을이면 베어 둔 볏단을 마당에 쌓아 놓고도 타작할 일손을 구하지 못한 농가가 많았다.
열다섯 살 여름, 홀로 도리깨를 휘두르던 한 달을 배병희는 잊지 않았다.
배병희는 김 양식과 농사로 모은 돈으로 소형 디젤 발동기와 탈곡기를 장만했다. 그리고 조카들을 비롯해 대여섯 명이 한 조를 이루는 이동식 탈곡팀을 꾸렸다.
소가 끄는 우마차에 기계를 싣고 농가를 찾아가 낟알을 털어 주는 방식이었다.

발동기의 평벨트가 탈곡기를 돌리면 일꾼들이 손발을 맞춰 볏단을 탈곡기 안으로 밀어 넣었다. 낟알이 순식간에 쏟아져 내렸다. 며칠 걸리던 타작이 반나절 만에 끝나자 농민들이 반겼다.
탈곡팀은 품삯으로 현금 대신 갓 털어 낸 벼를 받았다. 하루 일이 끝나면 배병희는 거둔 벼를 저울에 달아 일꾼들에게 일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자기 몫으로 뗀 벼는 모아 두었다가 다음 기계를 사고 일을 넓히는 데 보탰다.
우마차 탈곡팀이 자리를 잡자 배병희는 10마력 경운기를 들였다. 경운기에 탈곡기를 싣고 달리니 오가는 시간이 절반으로 줄었다.
일할 때는 발동기 대신 경운기 엔진으로 탈곡기를 돌렸다. 일하는 범위도 섬 전체로 넓어졌다.
1970년대 중반에는 충남 광천 장에서 ‘바인더’를 보고 큰마음 먹고 사들였다. 벼를 베어 묶는 보행형 수확기로, 당시 안면도에서는 낯선 기계였다.
낫으로 며칠씩 베어야 할 논도 바인더로 밀고 나가면 그만이었다. 기계가 밑동을 벤 벼를 노끈으로 묶어 논둑에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여럿이 종일 매달려야 할 일을 기계가 한두 시간 만에 끝내자 마을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배병희는 바인더로 베고 탈곡기로 터는 방식으로 일을 넓혀 갔다.
이 바인더는 훗날 화성 독정리로 이주할 때도 가져가 새 땅을 일구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6월이면 보리를, 가을이면 벼를 털러 마을을 돌았다. 비가 오기 전에 곡식을 털어야 해서 밤낮없이 일이 이어졌다. 보리타작 철에는 잠을 줄여 가며 열흘 동안 기계를 돌린 적도 있었다.
먼지와 짚가루 속에서 장정들도 번갈아 쉬어야 했다. 고된 일이었지만 돈 버는 재미도 있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아내가 끓인 고깃국과 고봉밥이 일꾼들을 맞았다. 일꾼들은 배병희네 마당에서 저녁을 먹고 이튿날 다시 기계 앞에 모였다.

여러 마을을 오가며 기계를 계속 돌리다 보니 부품이 자주 닳고 고장도 잦았다. 특히 빠르게 도는 크랭크축의 ‘메다르(메탈 베어링)’가 마찰열에 자주 녹아내렸다.
외딴 섬에서 부품을 구하려면 며칠씩 걸렸다. 자칫 타작이 멈출 판이었다.
배병희는 숟가락 위에 납을 녹여 축 틀에 붓고 매끄럽게 깎아 냈다. 베어링을 현장에서 직접 만들어 고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