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밥상

가족의 기억 · 독정 RPC

아버지의 밥상 ​

수채화로 그린 옆얼굴만 살짝 보인 채 밥을 맛있게 먹는 아들과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는 백발의 아버지

평생 쌀농사를 지어 남의 주린 배를 채워온 배병희에게 ‘밥상’은 단순히 끼니를 때우는 자리가 아니었다.

밥상은 말수 적고 무뚝뚝한 그가 세상과 마음을 나누는 길이었다.

배병희는 평소 다정한 말을 앞세우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행동에 담긴 속정만큼은 한없이 깊었다.

정미소 일을 돕던 자식이 밤늦게 돌아왔을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먼저 저녁을 들지 않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갓 삶은 수육 한 상을 차려놓고 자식을 우두커니 기다렸다.

“아버지, 왜 먼저 진지 안 드시고 기다리셨어요?”

자식의 물음에 아버지는 그저 젓가락을 쥐여줄 뿐이었다.

“식기 전에 어서 먹어라.”

온종일 쌓였던 고단함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 짧은 한마디와 따뜻한 고기 한 점은 자식의 가슴속에 평생 식지 않는 기억으로 남았다.

평생 흙을 일구며 근검절약이 몸에 밴 아버지였다. 하지만 자식의 체면을 세워주는 자리에서는 결코 돈을 아끼지 않았다.

명절날 자식의 친구들이 찾아와 인사를 올리면 덕담에는 서툴렀다. 대신 돌아가는 길에 말없이 두둑한 용돈을 손에 쥐여주곤 했다. 친구들 앞에서 자식의 기를 살려주려는 배려였다.


수채화로 그린 손주가 태어난 병원에서 갓난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배병희

손주들을 향한 내리사랑 또한 각별했다. 손주가 태어났다는 전화를 받고도 그는 담담하게 안부만 물었다.

그러나 이튿날 날이 밝기도 전에 새벽 첫차를 타고 서울 병원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갓 태어난 핏줄을 조심스레 품에 안고는 말없이 눈시울을 붉혔다.

손주가 아파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으면 만사를 제쳐 두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제 눈으로 손주를 보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정미소 형편이 어려웠을 때에도 자식들의 혼사는 온 정성을 다해 치러주었다. 아무리 시절이 각박해도 자식의 혼인 잔칫상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차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을 위한 상 앞에서는 한없이 박했다. 환갑이나 칠순 잔치를 열어드리겠다는 자식들의 간곡한 청을 한사코 마다했다.

“산 사람이 번잡스럽게 무슨 잔치냐?”

평생 수많은 이에게 쌀을 내주고 자식에게는 아낌없이 잔칫상을 차려 주면서도, 자신을 위한 상만은 끝내 마다한 사람이었다. 자식들은 긴 세월이 흐르고 머리에 서리가 내린 뒤에야 비로소 깨달았다.

아버지가 한평생 묵묵히 걸어온 그 고단한 삶이 가족과 세상을 배불리 먹여 살린 가장 크고 따스한 밥상이었다는 것을.

외전

아버지의 밥상

배병희 자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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