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의 1만 남은 들판

1990년대 초 · 독정 정미소

5분의 1만 남은 들판 ​

수채화로 그린 마지막 1만 2천 평만 남기기로 결단하며 장롱에서 땅문서 봉투를 꺼내는 배병희

당시 농촌에서는 농민들의 볏값을 떼어먹는 정미소 주인이 흔했다. 거래처 부도를 핑계 삼아 도망치거나, 문을 걸어 잠근 채 나 몰라라 파산해 버렸다.

“나도 돈을 떼였으니 줄 돈이 없다.”

“절반만 쳐줄 테니 억울하면 고소하라.”

손해는 고스란히 농민들 몫이 되었다.

그러나 배병희는 달랐다.

남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땀 흘린 사람의 몫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 배병희가 평생 굽히지 않은 원칙이었다.

볏값을 마련할 길은 오직 하나, 피땀으로 일군 땅을 내놓는 것뿐이었다.

1977년 안면도를 떠나와 남양만 간척지의 소금기를 우려내며 일구었던 6만 평(20정보)의 농토.

1983년 낡은 정미소를 인수할 때 논 일부를 팔았다. 들판에 전봇대를 세워 삼상 전력을 끌어들이느라 땅을 거듭 처분했다. 볏가마를 들일 창고를 짓고 진입로를 닦느라 또 팔았다.

이제 남은 땅까지 팔면 식구들이 먹고살 터전마저 송두리째 흔들릴 판이었다. 평생 흙을 목숨처럼 여겨 온 농부에게 제 손으로 일군 논을 파는 것은 살점을 도려내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배병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안방 장롱 깊숙한 곳에서 손때 묻은 누런 땅문서 봉투를 꺼냈다.

식구들이 입에 풀칠하며 버틸 1만 2천 평만 남기고, 나머지 논은 모두 팔기로 했다.

날짜를 맞추어 급전을 마련해야 했기에 제값을 따질 겨를도 없이 헐값에라도 논을 넘겼다.

그렇게 논을 팔아 마련한 현금 다발이 정미소 사무실 책상 위에 수북이 쌓였다. 약속한 결제 날이 되자, 배병희는 농민들을 정미소로 불러 모았다.


수채화로 그린 수매 장부를 펼쳐 농민에게 현금으로 볏값 전액을 지급하는 배병희

배병희는 수매 장부를 펼쳐 놓고 농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렀다. 볏값은 한 푼도 깎지 않고 빳빳한 현금으로 쥐여 주었다. 어음도 외상 전표도 아니었다.

볏값을 떼일까 봐 밤잠을 설치며 가슴을 졸이던 농민들은 눈앞에 놓인 돈다발을 보고 말을 잇지 못했다.

“배 사장, 정말 이 돈을 다 준단 말이오? 정미소 논까지 다 팔아서 마련했다던데….”

거친 손으로 지폐를 건네받은 한 늙은 농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어떤 농민은 떨리는 손으로 돈을 쥔 채 한참 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배병희는 농민들의 손을 꼭 쥐며 나직이 말했다.

“약속한 돈인데 당연히 드려야지요. 믿고 기다려주셔서 참말로 고맙습니다.”

수억 원의 빚더미 속에서 제 논까지 팔아넘기고 나니 손에 쥔 것이 거의 없었다. 그래도 배병희에게는 돈으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의 신뢰가 남았다.

배병희가 논을 팔아 볏값을 온전히 치렀다는 소식은 독정리를 넘어 장안면과 우정면, 남양만 일대 들녘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이듬해 추수철이 되자 들판의 풍경이 달라졌다. 농민들은 볏값 정산이 미덥지 않은 다른 정미소 대신, 경운기와 트럭에 나락을 가득 싣고 독정리로 몰려들었다.

“벼는 무조건 독정 정미소로 가야 혀. 배 사장한테 맡기면 하늘이 무너져도 볏값 떼일 일은 없어.”

1만 2천 평만 남기고 논을 내놓은 그 결단이 쓰러져 가던 정미소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날 지킨 약속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독정 정미소의 신용이 되었다.

1983 독정 정미소 · 18화

5분의 1만 남은 들판

배병희 자전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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