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 대신 지게

1940년대 태평양 전쟁과 광복 전후의 혼란 속에서 서민들의 삶은 곤궁했다. 비탈밭에 고구마와 감자를 심고 물길 없는 다랑논을 가꾸는 데는 온 식구가 매달려도 늘 일손이 모자랐다.
메마른 땅에서 난 작물만으로는 대식구의 생계를 꾸리기 빠듯했다. 그래서 어머니는 물때마다 바다로 나섰다.
배병희도 또래 아이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싶었다. 글을 배우고 세상을 알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에 통학은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험한 산길을 넘어 학교를 오가는 길은 멀었고, 집에는 거들어야 할 밭일과 바닷일이 많았다. 결국 배병희는 학교를 얼마 다니지 못하고 그만두어야 했다.
동무들이 책보를 메고 길을 나설 때, 그는 지게를 지고 밭으로 향했다. 마음 한구석에 차오르는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그러나 배병희에게는 일터가 곧 배움터였다. 장터에서 어른들의 거래를 보며 암산과 셈법을 익혔다. 고장 난 쟁기 같은 농기구를 뜯어보며 기계의 짜임새와 쓰임새도 깨쳤다.
어른들과 어울려 일하며 일의 순서를 파악하고 사람을 대하는 법도 자연스럽게 익혔다.
그는 그렇게 영민하고 야무진 생활인으로 자랐다.